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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1 | by 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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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증으로 인한 안면부의 하얀 반점들이 장애로 인정받기까지 그 길은 결코 짧거나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진 법정 다툼과 행정적 논의 끝에 백반증은 7년간의 법적공방을 거쳐 마침내 안면장애의 한 유형으로 공식 인정 받게 되었죠. 수많은 백반증 환자분이 겪어온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결코, 쉽지 않았던 치열했던 그 여정을 다시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법적 공백 속 환자들의 고충
2021년 이전까지 백반증은 장애인복지법상 안면장애 기준에 명시되지 않은 법적 공백 상태였습니다. 당시 기준은 “면상반흔, 색소침착, 모발결손, 조직의 비후나 함몰” 등을 중심으로 규정되었는데, 행정기관은 ‘색소침착’을 과다색소침착으로만 한정 해석하며 멜라닌세포 소실로 인한 탈색소 질환인 백반증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얼굴에 광범위한 백반증이 있어도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돌파구: 2014년 대전고등법원 판결

모두가 체념하고 있을 때 한 환경미화원의 용기 있는 도전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충남 보령시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했던 한모 씨(당시 71세)는 1991년부터 얼굴에 발생한 백반증이 점차 악화되어 2001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2006년 안면장애 3급으로 인정받아 국가 지원을 받고 있었으나, 2011년 장애등급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백반증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 등록이 취소되었습니다. 한 씨는 이에 불복하여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대전고등법원은 혁신적인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법원은 “한씨는 얼굴에 나타난 광범위한 백반증으로 인해 오랫동안 일상·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안면장애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나아가 “복지부 고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아닌 관련 법령의 해석에 따라야 한다”고 지적하며 백반증도 안면부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생활에 상당한 지장”이라는 실질적 기준을 강조하며, 행정기관의 경직된 해석을 정면으로 비판한 점입니다. 이는 백반증을 장애로 인정한 최초의 법원 판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구체적 장애등급 인정: 2017년 서울고등법원의 진전
2017년엔 얼굴 전체에 백반증이 발병한 한 환자가 원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간 판단을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백반증으로 인해 햇볕 화상에 취약해 야외 노동에 제한을 받는 등 신체 기능의 장애가 있다”며, 단순히 외관상의 문제가 아닌 실질적인 기능 장애를 인정한 것입니다. 특히 의료감정 결과를 근거로 “원고의 얼굴 전체에 백반증 반점이 나타나 있으므로 안면장애등급 2급에 해당한다”고 구체적인 등급까지 명시한 것은 백반증 환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진전이었습니다.
전환점이 된 2020년: 법원과 위원회의 연이은 인정
2020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먼저, 서울행정법원에서 전신 백반증 및 일광 화상 흉터 진단을 받은 강 모 씨가 동대문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정진 판사는 대한의사협회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백반증의 경우에도 안면부의 변형으로서 이로 인해 사회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받는 정도에 이른 경우 안면장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같은 해 9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더욱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2017년 백반증으로 안면장애 등급 심사를 신청했으나 ‘등급외’ 결정을 받았던 한 청구인의 사건에서, 감정의로 참여한 피부과 전문의는 매우 중요한 의학적 소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색소침착’이라는 의학 용어가 과다색소침착뿐만 아니라 백반증과 같은 저색소침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장애등급 판정 기준에서 색소침착을 과다색소침착만으로 한정하여 명시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의학적 소견은 행정기관의 협소한 해석을 뒤집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고 위원회는 법원의 판결 내용까지 고려하여 청구를 인용, 초기 ‘등급외’ 결정을 취소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판결과 결정들은 단순히 개별 환자의 승소를 넘어, 백반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해석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법원은 형식적 기준이 아닌 실질적 장애를 중시했고, 의료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로 행정기관의 오류를 바로잡았습니다.
표 1: 백반증 안면장애 관련 주요 법원 판결 요약
제도화의 완성: 2021년 보건복지부 고시
수년간 축적된 법원 판례와 행정심판 결정, 그리고 백반증 환자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전문가들의 의견은 마침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초, 장애인복지법 하위규정 개정안을 마련하여 입법예고 등의 절차를 거쳐 같은 해 4월 13일, 개정된 내용을 공포하고 즉시 시행했습니다. 이로써 오랫동안 논란으로 자리 잡았던 백반증의 장애 인정 기준이 보건복지부 고시 「장애정도판정기준」(보건복지부고시 제2021-109호)에 명확하게 담기게 되었습니다.
2021년 4월 시행된 장애정도판정기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① 노출된 안면부의 90% 이상의 변형이 있는 사람
② 노출된 안면부의 60% 이상의 변형이 있고 코 형태의 2/3 이상이 없어진 사람
③ 노출된 안면부의 75% 이상의 변형이 있는 사람
④ 노출된 안면부의 50% 이상의 변형이 있고 코 형태의 2/3 이상이 없어진 사람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① 노출된 안면부의 60% 이상의 변형이 있는 사람
② 코 형태의 2/3 이상이 없어진 사람
③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 변형이 있고 코 형태의 1/3 이상이 없어진 사람
④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이 변형된 사람
⑤ 코 형태의 1/3 이상이 없어진 사람
⑥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에 백반증이 있는 사람
⑦ 노출된 안면부의 30% 이상이 변형된 사람
구체적 판정 요건
「장애정도판정기준」에 따르면 “노출된 안면부”는 전두부와 측두부, 이개후부의 모발선과 정면에서 보았을 때 경부의 전면과 후면을 구분하는 수직선을 연결한 선을 경계로 얼굴, 귀, 목의 앞면을 포함합니다.
치료 기간 및 장애 고착 확인
원인 질환 등에 대하여 6개월 이상의 충분한 치료 후에도 장애가 고착되었음을 진단서, 소견서, 진료기록 등으로 확인하여야 합니다. 수술 또는 치료로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장애 진단을 처치 후로 유보하여야 하며, 2년 이내에 장애 상태의 변화가 예상될 때에는 장애의 판정을 유보하여야 합니다.
의료기관의 진단
안면장애 진단은 의료기관의 성형외과·피부과 또는 외과(화상의 경우) 전문의, 또는 의료기관의 치과(구강악안면외과)·치과 전속지도 전문의(구강악안면외과)가 할 수 있습니다. 백반증의 경우는 피부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환자를 위한 준비 사항
백반증으로 안면장애 등록을 고려하시는 환자분들께서는 다음 사항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충분한 치료 기록 확보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히 백반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과 그 경과가 기록된 진료기록이 중요합니다.
피부과 전문의 상담
현재 상태가 장애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지, 특히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이라는 면적 기준과 “장애의 고착” 여부에 대해 피부과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신 후 전문의에게 장애 진단서, 소견서 등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시길 바랍니다.
장애 등록 신청 절차
주소지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장애인 등록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 후 국민연금공단의 장애 정도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이 내려집니다.
백반증 환자가 당당해지기를 바랍니다
백반증이 안면장애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개인의 용기와 전문가의 소신, 그리고 사법부의 균형 잡힌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습니다. 백반증 환자들에겐 국가가 백반증으로 인한 어려움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을 텐데요.
여러 연구에서도 안면부 백반증이 환자분들의 삶의 질과 심리, 사회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제도 개선을 통해 더 많은 백반증 환자분들이 정당한 사회적 지원을 받고,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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