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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8 | by 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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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8 | by 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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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증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에서 발생하는 자가면역 탈색소 질환입니다. 전 세계 1%라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질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의외로 많습니다.
백반증 환자가 임신하면 경과가 어떨까? 오랜 시간 자외선 치료를 받으면 피부암이 생기지는 않을까? 자외선 치료가 피부 이외의 건강에는 영향을 미칠까? 등등 이러한 질문들은 실제로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자주 묻는 것들이지만, 기존의 소규모 임상 연구로는 명확한 답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수만 명을 수년간 추적해야만 답이 나오는 질문들이기 때문이죠.
저는 대학 교수 시절,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활용한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인구 5,000만 명의 98%에 해당하는 의료 이용 정보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어 있습니다. 진단명, 처방 내역, 시술 기록 등이 포함된 이 데이터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가공되어 연구자들에게 공개됩니다. 10년 이상에 걸친 10만 명 이상의 백반증 환자 진료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단일 병원에서는 절대 확보할 수 없는 규모의 분석이 가능합니다.

건강보험 빅데이터의 가장 큰 강점은 대규모 인구 집단을 장기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반증처럼 유병률이 1% 수준인 질환이라도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환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드문 결과 변수(피부암, 심혈관 사건 등)의 발생도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백반증과 임신, 자연유산 위험이 높을까
백반증이 임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오랫동안 불분명했습니다. 기존에는 단일 기관에서 7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유일했고, 그 연구에서는 백반증 유무에 따른 임신 결과의 차이가 없다고 보고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건강보험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백반증이 있는 임산부 4,738명과 백반증이 없는 대조군 47,380명을 비교한 결과, 백반증 환자의 만삭분만율은 유의하게 낮았고(교차비 0.870), 자연유산 발생률은 유의하게 높았습니다(교차비 1.250). 7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차이는 이러한 데이터 규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과를 통해 백반증은 단순히 피부에 국한된 질환이 아니라 전신 자가면역 반응과 관련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백반증의 발병에는 CD8+ T세포 매개 면역 반응이 핵심적으로 관여하는데, 이러한 면역학적 이상이 태반의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에 영향을 미쳐 유산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렇기에 임신을 계획하는 백반증 환자에게는 이 연구 결과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며, 의료진은 산과적 관리의 중요성을 함께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자외선치료, 오래 받으면 피부감 생길까
좁은파장 자외선B(NB-UVB) 광선치료는 백반증의 대표적인 치료법입니다. 통상 주 2~3회씩 수개월에서 수년간 치료를 지속해야 의미 있는 색소회복을 기대할 수 있어 인내심이 필요한 치료 중 하나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장기간 자외선에 반복 노출되는 것이 피부암 위험을 높이지 않는지 말이죠. 실제로 환자와 의사 모두의 오랜 관심사이기도 했습니다. 진료 현장에서도 "자외선 치료를 오래 받으면 피부암에 걸리지 않나요?" 라는 질문을 빈번하게 받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60,321명의 백반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 코호트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광선치료 횟수에 따라 환자를 5개 군(0회, 1~49회, 50~99회, 100~199회, 200회 이상)으로 나누어 피부암 발생 위험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비흑색종 피부암과 흑색종 모두 광선치료 횟수 증가에 따른 위험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200회 이상 치료를 받은 군에서 광선각화증(전암 병변)의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되어, 장기 치료 시 정기적인 피부 검진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6만 명 규모의 데이터로 입증된 이 결과는, 백반증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자외선 치료의 장기 안전성에 대한 실질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심혈관 보호와 골절 예방에 좋은 자외선치료
빅테이터 연구의 묘미는 예상하지 못한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장기간 좁은파장 자외선B 광선치료를 받은 백반증 환자를 추적해보니 심혈관·뇌혈관 사건과 골다공증성 골절의 위험이 유의하게 낮았습니다.
100회 이상의 NB-UVB 광선치료를 받은 백반증 환자 3,229명과 광선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 9,687명을 성향점수매칭 기법으로 비교한 결과, 광선치료군에서 심혈관 및 뇌혈관 사건의 위험이 약 36% 감소했습니다(위험비 0.637). 세부적으로 심혈관 사건(위험비 0.599)과 뇌혈관 사건(위험비 0.808) 모두 광선치료군에서 낮게 나타났습니다.
골 건강에 대한 분석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11년간의 전국 단위 추적 연구에서, 장기 광선치료를 받은 환자군은 주요 골다공증성 골절(척추, 고관절, 손목, 상완)의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으며(위험비 0.699), 특히 고령 여성에서 두드러졌습니다. 백반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며 자외선을 받았을 뿐인데, 골절 위험까지 낮아졌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선치료에 활용되는 자외선B는 피부에서 비타민D 합성을 촉진하는 파장입니다. 특히 좁은파장 자외선B는 화상을 유발하는 파장대를 제거했기 때문에, 일반 햇빛보다 안전하게 비타민D를 생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 덕분에 장기간의 광선치료가 비타민D 생성을 통해 골 건강과 심혈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뿐만 아닙니다. 자외선이 피부에서 산화질소(nitric oxide)를 방출시켜 혈압을 낮추거나, 죽상경화를 촉진하는 T세포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가설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기전이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자외선 치료가 피부를 넘어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으로 해석되어 앞으로의 연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듯합니다.
데이터가 답한 것과 남은 한계
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진료실에서 답할 수 없었던 질문에 빅데이터가 답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말이죠. 단일 병원에서 수십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임신 결과의 차이, 수만 명의 장기 추적이 필요한 피부암 위험 평가, 예상치 못한 치료의 부수적 효과까지, 건강보험 데이터는 이 모든 분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는 진단명과 처치 코드 중심이기 때문에, 개별 환자의 백반증 중증도나 병변 부위, 생활 습관 등 세밀한 임상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광선치료군의 심혈관 위험 감소가 자외선 자체의 효과인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관리 습관 때문인지를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빅데이터 연구의 결과는 임상 연구와 상호 보완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들이 백반증 환자 진료에 미친 영향은 분명합니다. 자외선 치료를 망설이는 환자에게 장기 안전성 데이터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 임신을 준비하는 환자에게 근거에 기반한 상담이 가능해졌습니다. 치료가 피부만이 아니라 전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치료 지속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전 국민이 하나의 건강보험 체계에 포함되어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빅데이터는 그 자체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인프라입니다. 이 데이터 덕분에 "자외선 치료를 오래 받아도 괜찮은가요?", "자외선 치료가 피부 말고 몸에는 해를 끼치지 않나요?"와 같은 환자들의 절실한 궁금증에 근거를 갖춘 답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1. Park KY, Kwon HJ, Wie JH, Lee HH, Cho SB, Kim BJ, Bae JM. Pregnancy outcomes in patients with vitiligo: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cohort study from Korea. _J Am Acad Dermatol._ 2018;79:836–842.
2. Bae JM, Ju HJ, Lee RW, et al. Evaluation for skin cancer and precancer in patients with vitiligo treated with long-term narrowband UV-B phototherapy. _JAMA Dermatol._ 2020;156:529–537.
3. Bae JM, Kim YS, Choo EH, et al. Both cardiovascular and cerebrovascular events are decreased following long-term narrowband ultraviolet B phototherapy in patients with vitiligo: a propensity score matching analysis. _J Eur Acad Dermatol Venereol._ 2021;35:222–229.
4. Han TY, Choi JE, Lee JHK, Kim YS, Kim K, Bae JM. Decreased risk of major osteoporotic fracture after long-term narrowband ultraviolet B light phototherapy in patients with vitiligo: an 11-year nationwide propensity score-matched study. _J Am Acad Dermatol._ 2021;85:97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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