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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8 | by 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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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8 | by 배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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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유럽피부과포럼(EDF)과 일본피부과학회에서 각각 자체 지침을 발표한이후 영국과 독일에서도 가이드라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두 특정 지역의 관점에 기반한 것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표준 권고안은 여전히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백반증에 어떤 치료를 어떤 기준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국제적 합의가 부재하다 보니각국 정부가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정하거나 치료 접근성 정책을 수립할 때도 참고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나라마다, 혹은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의사마다 치료 방침이 달랐기에 환자 입장에서는 어디서 누구에게 진료를 받느냐에 따라 치료 경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백반증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저 역시 한국 대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수년 간의 논의 끝에 2023년 유럽피부과학회지(JEADV)에 2편의 합의 논문이 출간되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 생생한 과정과 가이드라인이 요구하는 핵심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42명이 만장일치로 합의하기까지
국제 백반증 태스크포스(Vitiligo Task Force, VTF)를 중심으로 대규모 합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럽피부과학회(EADV) 소속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동아시아백반증학회(EAVA), 글로벌백반증재단(GVF), 국제백반증환자단체위원회(VIPOC) 등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쳤습니다. 최종적으로 5개 대륙에서 42명의 백반증 전문가와 4명의 환자 대표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만들어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시작된 프로젝트는 수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2021년에만 세 차례의 온라인 회의가 열렸고, 2022년 4월 암스테르담에서 환자 대표 18명이 참석한 VIPOC 회의, 같은 해 9월 밀라노 EADV 학회에서의 최종 합의 회의까지,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멈추지 않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환자 대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여 의견을 낸 것도 이 프로젝트의 특별한 점입니다. 의사들만의 합의가 아닌 환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권고안을 만들고자 한 것이기에 더욱 의의가 깊었습니다.
전 세계의 42명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으나 더욱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각자의 진료 환경, 사용 가능한 치료 자원, 환자 인구의 특성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하나의 합의안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광선치료 장비의 보급률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특정 약제가 허가되어 있는 나라와 규제가 되어 있는 나라 사이에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권고안을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치료 주제별로 3~8명의 소그룹이 문헌 근거를 정리하고, 전체 회의에서 토론한 뒤, 미해결 쟁점은 8명의 핵심 검토 그룹이 설문과 추가 회의로 최종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권고안은 만장일치 합의를 원칙으로 하기로 했고요.
국제 가이드라인에 반영된 한국 연구 3가지
저는 우리나라에서 축적해 온 임상 경험과 연구 성과가 국제 가이드라인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연구가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았기도 했고요. 논의 끝에 한국 연구는 크게 3가지가 반영되었습니다.
첫째, 미세펀치이식술(micropunch grafting) 분야입니다. 0.8mm 모터 구동 펀치를 이용한 이식술은 저희 (배정민 연구팀) 연구팀이 230명의 난치성 백반증 환자를 대상으로 발표한 연구를 근거로 가이드라인의 수술 치료 옵션에 정식 포함되었습니다. 이 술기는 기존 펀치이식술에 비해 시술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소회복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둘째, 분절형 백반증의 병용요법입니다. 308nm 엑시머 레이저, 타크로리무스 연고, 단기 전신 스테로이드를 함께 사용하는 치료 전략은 15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유효성이 확인되었고, 가이드라인에 반영되었습니다. 분절형 백반증은 한번 안정화되면 자연적으로 색소가 돌아오기 어려운 유형인데, 초기에 이 병용요법을 적용하면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자외선 치료의 장기 안전성입니다. 한국에서 6만 명 이상의 환자를 추적 관찰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 NB-UVB 치료 200회 이상 시 광선각화증 위험은 증가하지만 500회까지는 흑색종 및 비흑색종 피부암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이 데이터는 장기 자외선 치료의 안전성 근거로서 가이드라인에 직접 인용되었습니다. 연구팀의 이러한 기여를 통해 가이드라인이 서양 환자뿐 아니라 아시아 환자의 임상 현실에도 부합하는 내용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치료 원칙 4가지
해당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치료 원칙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기 치료입니다. 빠르게 진행하는 백반증에서는 멜라닌세포의 비가역적 손상을 막기 위해 조기에 적극적인 면역 조절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분절형 백반증과 말단부 백반증은 시간이 지나면 색소회복이 매우 어려워지므로 초기 대응이 더욱 중요합니다.
둘째, 안정화와 색소회복의 구분입니다. 면역 조절 치료는 질환 안정화에 효과적이지만, 색소회복을 위해서는 자외선 치료 등 멜라닌세포 전구세포를 자극하는 추가 조치가 필요합니다. 또한 얼굴과 목은 색소회복 반응이 좋은 반면, 손끝이나 발가락 같은 말단부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이런 차이를 환자에게 설명하여 현실적인 기대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공유 의사결정입니다. 질환 활성도, 범위, 부위, 삶의 질 등을 종합 평가하여 환자와 함께 치료 방향을 결정하도록 권고합니다.
넷째, 유지 치료입니다. 색소회복에 성공하더라도 치료 중단 후 첫 1년 내 약 44%에서 재발이 발생합니다. 유지 요법군의 6개월 재발률이 9.7%인 반면 위약군은 40%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는 백반증이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임을 보여줍니다.
가이드라인이 환자에게 의미하는 것
이 가이드라인은 전 세계 피부과 의사들이 백반증 환자를 만났을 때 따를 수 있는 표준화된 진료 알고리즘입니다. 동시에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건강보험 급여나 치료 접근성을 논의할 때 참조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이기도 합니다. 특히 백반증 치료가 단순한 미용 시술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라는 점을 국제 전문가 합의 수준에서 명확히 한 것은, 각국의 보험 급여 논의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JAK 억제제를 비롯한 새로운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지금, 향후 치료 권고안 업데이트의 토대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이 작업은 백반증이 '단순한 미용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메시지를 국제적으로 공식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백반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전 세계 전문가들이 이 질환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으며, 근거에 기반한 치료법이 존재합니다"라는 사실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수년 간의 논의와 합의를 거쳐 이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한 사람의 참여자로서 뜻깊게 느껴집니다.
[참고문헌]
1. van Geel N, Speeckaert R, Taïeb A, et al. Worldwide expert recommendations for the diagnosis and management of vitiligo: Position statement from the International Vitiligo Task Force Part 1: towards a new management algorithm. _J Eur Acad Dermatol Venereol._ 2023;37:2173–2184.
2. Seneschal J, Speeckaert R, Taïeb A, et al. Worldwide expert recommendations for the diagnosis and management of vitiligo: Position statement from the international Vitiligo Task Force—Part 2: Specific treatment recommendations. _J Eur Acad Dermatol Venereol._ 2023;37:2185–2195.
3. Bae JM, Lee JH, Kwon HS, Kim J, Kim DS. Motorized 0.8-mm micropunch grafting for refractory vitiligo: a retrospective study of 230 cases. _J Am Acad Dermatol._ 2018;79(4):720–727.e1.
4. Bae JM, Ju HJ, Lee RW, et al. Evaluation for skin cancer and precancer in patients with vitiligo treated with long-term narrowband UV-B phototherapy. _JAMA Dermatol._ 2020;156(5):529–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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